[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현재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프로골프 대회가 열리는 나라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최고의 프로골프 무대인 미국의 PGA와 LPGA 경기는 물론 일본 프로골프 투어도 중단된 상태다.
갤러리가 없는 무관중 경기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프로골프 대회가 열려 미국의 주요 방송사가 중계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여자 프로골프, KLPGA 이야기일 뿐이다.
■ 여자 프로골프 풍성한 상금 놓고 국내-해외파 각축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제주 서귀포시 롯데 스카이힐 제주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KLPGA 투어 롯데칸타타 여자오픈에서 세계 랭킹 13위인 '해외파' 김효주 선수가 연장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김효주는 역시 '해외파'인 세계 랭킹 6위 김세영과 동타를 이뤄 연장 승부에 돌입한 뒤 파5, 18번 홀에서 치른 1차 연장에서 버디를 잡아 파에 그친 김세영을 꺾고 정상에 올라 우승상금 1억 6000만 원을 받았다.
앞서 지난주 열린 KLPGA 투어 올해 두 번째 대회인 E1 채리티오픈에서는 이소영 선수가 통산 5승째를 기록하며 우승 상금 1억 6000만 원을 받아갔고, 올해 KLPGA 투어 첫 경기이자 메이저 대회인 제42회 KLPGA 챔피언십에서는 박현경 선수가 첫 우승과 함께 우승상금은 2억 2000만 원의 주인공이 됐다.
미국과 일본의 골프투어가 중단되다 보니 고진영, 박성현, 김세영, 이정은6, 김효주, 지은희, 노예림 등 LPGA 멤버들은 물론 안선주, 이보미, 배선우 등 일본투어를 뛰는 선수들도 상금벌이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지난달 14일부터 나흘간 열렸던 제42회 KLPGA 챔피언십 대회는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를 통틀어 사실상 가장 먼저 재개된 프로 골프 대회로, 국내 골프 역대 최고인 총상금 30억 원으로 더욱 화제가 됐다.
이 대회는 특히 KLPGA가 코로나19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을 위해 협회 기금 및 협찬사들의 지원으로 총상금 30억 원을 투자했다. 출전 선수 150명 모두에게 성적 순으로 상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최하위도 624만 원을 받은 것으로 화제가 됐다.
이에대해 장하나 선수는 “남자 프로들이 많이 부러워했다. 주니어 선수들도 남자가 아닌 여자였어야 했다고 말할 정도였다.”라고 최근 골프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LPGA 투어에서 활동 중 참가한 김세영은 "정말 좋다. LPGA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인데 좋은 방식을 고안해줘 감사하다"고 했고, 박성현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선수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밝혔다.
KLPGA는 올해 269억원의 상금을 놓고 모두 31개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 남자대회는 전무...“너넨 다 죽었어” 기업들에 뿔난 KPGA 회장
반면 남자 골프대회, KPGA 대회는 올들어 단 한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작년에는 시즌 첫 대회인 ‘제15회 DB손해보험 프로미 오픈(총상금 5억원, 우승상금 1억원)’이 4월18일부터 열렸다. 하지만 올해 첫 대회는 다음달 2일에서야 열리는 우성종합건설 아라미르CC 부산경남오픈(총상금 5억원)이다.
KPGA의 올해 예정된 경기 수는 17개, 총상금은 150억원 규모로 여자골프 KLPGA 대회의 절반 정도다. 이 때문에 남자 프로골퍼들은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다. 대회상금이 없으니 레슨 등 아르바이트는 물론 음식점 경영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국내에서 남자대회가 부진한 것은 기업들의 후원부족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최근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해프닝이 있었다.
구자철 KPGA 회장은 지난달 25일 자신의 SNS 계정에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후원사들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저녁 7시50분에 만취 실화냐?”라고 취중으로 쓰는 글임을 밝힌 뒤 “여자프로골프대회만 후원하는 하이트, 한화, NH금융, OK저축은행, 교촌, 롯데, S-oil”이라며 후원사들 이름을 모두 나열했다. 이어 “너넨 다 죽었어. 남자프로 공공의 적”이라고 험담을 퍼부었다.
■ 여자 골프대회에 기업 후원 쏠리는 이유는?
골프계의 여고남저(女高男低) 현상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특이한 현상이다. 통상 미국에서 PGA 시장 규모는 LPGA의 10배 정도로 추산된다.
2016년 기준, PGA투어 총상금이 3억2500만 달러였고 LPGA 총상금은 6300만 달러로 5배 규모지만 선수의 스폰서 수입과 광고 수입을 합치면 총수입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총 수입뿐 아니라 대회 당 갤러리 숫자, 중계방송 시청률, 미디어의 헤드라인 빈도 수, PGA와 LPGA의 총수입 규모를 모두 감안하면 차이는 그보다 더 크다. 2013년 PGA가 벌어들인 TV 중계권 수입은 3억6400만달러였지만 LPGA의 중계권 수입은 1600만달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여자골프의 인기가 남자에 비해 압도적인 이유로는 첫째 한국 여자 골퍼들이 LPGA 투어에서 보여준 눈부신 성과가 꼽힌다. 1998년 박세리의 US오픈 우승 이후 한국 여성 골퍼들은 매년 LPGA 무대를 휩쓸고 있다.
둘째, 상금 등 경비를 내서 대회를 만드는 후원사,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여성대회가 훨씬 시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직접적인 골프관련 산업인 의류는 여성용 골프웨어가 시장을 좌우하는 현실이다. 골프채 등 장비도 최근에는 여성용품의 가격이 남성용에 비해 훨씬 비싸지는 추세다.
국내에서 금융사들의 골프대회 후원이 KLPGA에만 쏠리는 것도 각종 금융상품에 대한 선택권이 남편이 아닌 아내, 즉 여성쪽에 있다는 시장조사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이로인해 KLPGA를 직접 주최하는 타이틀스폰서만 36개 기업에 달한다.
각 기업별 골프대회 후원 현황을 보면 재계 1위인 삼성은 골프대회를 후원하지 않는 상황이고 2위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는 남자대회 PGA, 국내에서는 여자대회 즉 KLPGA를 지원하고 있다. SK는 국내에서 남녀 대회를 각각 1개씩 후원해왔지만 올해는 취소했다.
그러나 5위 롯데그룹은 여자골프대회만 후원하고 있고 7위 한화와 주요 금융사들도 대부분 KLPGA를 골라 스폰서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