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군 이야기 (25)] 포대장 시절을 뒤로 한 대학원 공부, '즐거운 상상'과는 전혀 달라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0.05.28 16:13 ㅣ 수정 : 2020.05.28 16:13
고민끝에 위탁교육시험 선택, 합격의 기쁨은 잠깐이고 '고난행군'계속돼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며칠 간 고민하다가 결국은 개인의 발전을 위하여 위탁교육 시험을 보기로 결정하고 전대본부로 보고를 했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는 근무성적이 양호하고 본인이 원할 경우에 민간 대학(국내 및 해외)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공부할 수 있다. 물론 학비는 공군에서 지원하고, 위탁교육 기간은 부대를 떠나 해당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임무다. 정말 좋은 여건이다. (지금은 공사 출신이 아니라도 위탁교육을 갈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험과목은 영어, 수학, 전자공학 등이었다. 영어는 업무상 매일 사용하므로 큰 부담은 없었지만 수학과 전자공학이 문제였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벌써 시간이 꽤 흘렀다. 생도때 보던 책을 구해서 다시 공부하는데, 머리속이 하얗게 되는 느낌이다. 괜히 신청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위탁교육을 가기 위해서는 시험을 두 번 치루어야 한다. 즉, 1차 시험은 공군내 선발 시험이고, 2차 시험은 해당 대학에 가서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시험을 치룬다. 결코 만만한 과정이 아니었다. 아무튼 일과시간 후와 주말에는 꼼짝 없이 숙소에 앉아서 시험공부를 했다. 그때는 왜 그리도 술 마시자는 후배들의 유혹이 많은지.......
시간은 흘러, 어느덧 시험일자가 되었고 필자는 1차 시험인 공군내 선발 시험을 치루기 위하여 공군사관학교로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시험! 문제를 풀다보니 머릿속이 과열되어 머리가 폭발하는 줄 알았다.
가을로 접어들 때쯤 해서 합격자 명단이 발표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필자의 이름이 그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사명령이 하달되었다. 포대장을 마치고 공군사관학교로 소속이 바뀌면서 본격적인 대학원 시험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군산기지에서는 약 20개월 정도 근무를 했다.
포대를 육군에서 인수한 후에 심혈을 기울여 지휘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이 있었고, 숱한 난관을 극복하면서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는데, 막상 포대장을 마치고 떠나려고 하니 하나의 임무를 완수했다는 성취감과 아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11월 초에 포대장 이취임식이 있었고, 후임자에게 포대를 인계한 후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정든 군산 포대를 떠났다.
며칠 후, 필자를 비롯한 1차 시험 선발자들은 사관학교에 집결해서 대학(원) 시험에 대비한 각종 교육을 받았다. 필자는 한양대학원 전자공학과에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이날부터 대학원 본고사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약 한달 반 정도의 시험 준비 기간을 거쳐 대학원에 가서 시험을 보게 되는데, 매일 책상에 앉아서 시험공부를 하려니 처음 며칠은 적응이 안되었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답답한 한달 반이었다.
시간은 흘러, 12월 중순! 시험을 치루는 날이 되었다. 답안지는 빈칸 없이 모두 채웠다. 그리고 스스로 잘 될 거라고 최면을 걸면서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 그리고 합격자 발표를 하는 날이 밝았다. 당시는 인터넷이나 휴대폰이 없을 때라 합격자 발표가 나오면 한양대에서 1년 먼저 위탁교육을 받고 있는 후배 장교가 확인해서 알려주기로 했다.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후배와 통화했다. 합격했다는 후배의 말에 그동안 쌓인 긴장이 풀어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면서, 앞으로 어떻게 즐거운 대학원 생활을 할지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위탁교육생의 생활은 부대를 떠나서 학교에서 하는 생활이기에 매우 자유롭고 여유가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대학원 연구실에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며칠 후에, 대학원에 가서 어떤 교수님 연구실로 가야 할지를 결정하고, 다음날부터 연구실로 출근했다. 나의 선택지는 컴퓨터 언어 분야 전공이었다. 그때가 1월 초로 기억한다.
연구실 생활은 박사 과정 학생이 일종의 팀장이 되어서 석사 과정 학생들을 이끌어 가는 형태였다. 며칠이 지나면서부터 공부에 대한 부담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당시 필자를 제외한 신입생 대다수는 대학을 마치고 갓 입학한 학생들이었고 필자보다 5~6년 정도 어린 학생들이었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연구실에서 돌아가면서 과목별로 연구한 것을 발표도 하고 토론도 해야 했다. 나이 어린 신입생들은 공부가 계속 이어지는 환경이었기에 능숙하게 했는데, 필자는 많은 것이 어렵고 새로웠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6년 만에 공부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아무튼 합격자 발표하는 날의 즐거운 상상과 기대는 사라지고 밤을 낮 삼아 공부할 때가 다반사였다.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 갔다.
한편, 대학(원)에 위탁교육 받으러 가는 것을 마치 대충 공부하며 쉬러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장교들이 있었다. 필자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 즉, 각 군 규정상, 성적이 불량하면(C학점 이하로 기억한다) 즉시 원대복귀와 동시에 각 군의 ‘징계위원회’는 물론 ‘장교 부적격 심의위원회’에 회부된다.
‘징계위원회’나 ‘장교 부적격 심의위원회’에 회부된다는 것은 장교로서 엄청난 불명예이며, 차후 진급이 매우 심각한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실제로 성적 불량으로 원대복귀해서 징계를 받은 사례가 있었기에 위탁생들은 늘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심한 규정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규정이 이해가 간다. 귀중한 국비로 교육을 받는데 성적이 불량하면 되겠는가!)
첫 1학기 기말시험이 끝나고 성적표를 받은 후에야 공부하는 것이 궤도에 올랐음을 느끼며 자신감이 생겼다. (2년 후 졸업 성적은 매우 양호했다.) 대학원 2년을 지내면서 방학이란 개념은 없었다. 연구실에 계속 출근해서 공부(연구)를 해야 했고,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기간은 하계와 동계방학 기간 중에 공군에서 실시하는 위탁생 소집 교육 기간(2박 3일 정도)이 유일한 휴가였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