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안펀드 발행 40일… AA등급만 몰리는 양극화 해결, 투트랙으로?
[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채권안정펀드(채안펀드)가 본격 운영된지 40일이 넘어가고 있지만 AA등급 이상의 우량 회사채로 매입이 쏠리면서 비우량 회사채가 외면받는 양극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채안펀드 출자기관들이 수익성 압박을 받고 있어 비우량 회사채를 기피하고, 시장 전반적인 분위기 역시 상위등급 회사채만 선호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융업계에서는 채안펀드가 지금처럼 우량 회사채 위주로 매입을 이어가고, 한국은행이 특수목적회사(SPV)를 설립해 비우량 회사채 매입을 지원하는 ‘투트랙(two track)’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고 있다.
1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채안펀드가 매입한 회사채 약 6000억원은 지난달 6일 롯데푸드를 시작으로 총 11건이었다. 장기 회사채를 기준으로 평균 AA등급 이상의 우량 회사채에 집중돼 있는 양상이다.
A급 이하의 비우량 회사채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와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를 통한 매입이 이뤄질 계획이었으나, 이마저도 A급 기업들에게 몰리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이달 말 1차 발행될 5000억원 규모의 P-CBO에도 기간산업안정자금(기안기금)의 조건 중 하나인 ‘고용총량유지’가 의무가 뒤늦게 부과되면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달 14일 기업들이 1차 P-CBO를 신청했을 때만 하더라도 고용유지조건이 없었던만큼 소급적용시 불만이 나올 수 있다.
또한 신청 기업들이 저신용 비우량 기업들이 대부분인만큼 구조조정 없이 정상화하는 것이 어렵다는 목소리도 높아 금융당국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 채안펀드 매입 11개 기업, AA등급 이상으로 쏠려…보수적인 수요·공급이 원인
지난주 회사채 3년물(AA-, 무보증)과 동일만기 국고채 신용 스프레드는 74.9bp(1bp=0.01%포인트)로 3월 말 59.5bp보다 큰 폭으로 벌어졌다. 신용위험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다.
채안펀드가 매입한 11건의 회사채는 롯데푸드(AA), 롯데칠성음료(AA), 기아차(AA), 오리온(AA), 호텔신라(AA), SK에너지(AA+), GS(AA), CJ대한통운(AA-), 롯데쇼핑(AA), 롯데지주(AA), LG CNS(AA) 등이다. CJ대한통운을 제외하고는 AA등급 이상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채안펀드 수요와 공급이 보수적인 기조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채안펀드 출자기관들은 대부분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의 시중은행으로 IBK자산운용이 대표로 출자금을 운용한다. 신한BNP파리바·멀티에셋·KB·NH아문디·하나UBS·삼성·한투·유진자산운용 등 8개 하위 자산운용사에 재투자하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채안펀드는 시중은행들이 출자기관으로 참여해 조성한 펀드”라며, “운용사 입장에서도 펀드를 잘 운용해서 어느정도 수익을 내야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시중은행 역시 손실을 안으면서 비우량기업에 투자할 유인이 없다. 채안펀드가 우량 회사채 매입 위주로 높은 회수율을 얻고자 하는 이유다.
회사채 시장 역시 AA 이상의 상위등급만 선호하고 있다.
앞선 관계자는 “AA-등급은 A등급으로 하향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화솔루션(AA-)급의 회사채도 기피하는 분위기”라며 “AA등급 이상으로만 수요가 쏠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더해 발행시장이 차츰 안정을 찾으면서 채안펀드가 아닌 일반투자자·기관 등을 중심으로 수요가 회복되고 있는 영향도 한몫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상위등급 회사채에 대해서는 경쟁률이 높은 상황”이라며, “크레디트 리스크가 없고 발행금리가 높아져서 괜찮다는 시각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즉 현재 금융기관·연기금 등을 중심으로 가용자본이 꽤 있기 때문에 투자여력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결국 상대적으로 발행 금리가 낮은 채안펀드가 시장에서 외면을 받으면서 당초 계획했던 최대 20조원 규모 중 1조원도 채우지 못한 것이다.
■ 한은 SPV, 비우량 회사채·CP 등 매입 예정…P-CBO, 비우량기업 고용유지조건 조정 필요
채안펀드가 우량 회사채로 편중됨에 따라 정부에서는 지난달 22일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저신용등급 회사채·CP(기업어음)을 매입하고 P-CBO의 공급 규모도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기획재정부 측은 “그동안 채권시장안정펀드·P-CBO·한국은행의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 신설 등에도 불구하고,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와 CP는 여전히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었다”며, 한국은행이 유동성 지원을 바탕으로 저신용 회사채·CP까지 매입하는 특수목적기구(SPV)의 설립을 예고했다.
한국은행은 20조원 규모의 재원으로 산업은행 산하에 SPV를 설립해 비우량기업 회사채·CP 등을 매입할 방침이다.
다만 자금 운용을 한국은행과 산업은행 중 누가 할지는 미정이다. 한국은행에서 자금을 출자하지만 산업은행에 대출해주는 형식이 될지 SPV로 직접 조달할지도 아직 결정된 바 없다. 업계에서는 한국은행이 대출 방식인 전자의 안을, 정부·산업은행은 직접 조달안을 선호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이번달 혹은 다음달 초 결정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은의 SPV는 하위등급 회사채를 매입하도록 구조를 마련할 것”이라며, “결국 채안펀드는 종전처럼 상위등급 회사채 매입을 지속하도록 매입 채널이 이원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당초 A급 이하 비우량 회사채·CP 등의 매입 방식 중 하나였던 P-CBO 역시 조정이 필요해질 전망이다. P-CBO는 부실 우려 심사를 통과한 비우량기업 회사채를 하나의 채권으로 만들어 신용보증기금이 지급보증을 한다. 이후 우량 채권 형태로 재발행하는 형태다.
지난달 14일 1차 P-CBO 신청에는 한솔그룹, 대한해운, 현대건설기계, CJ CGV 등 A등급 기업들도 다수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결국 P-CBO마저 BBB급 등 비우량 회사채를 외면하게 되지 않을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앞선 관계자는 “아직 1차 신청 단계인만큼 더 지켜봐야할 것”이라며, “소매 쪽을 제외하고 일반 투자자가 부재한 두산 계열사나 대한항공 등 BBB등급 기업들은 충분히 지원을 받을 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BBB등급에 해당하는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두산(BBB+)과 두산인프라코어(BBB)는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어렵게 되자 각 기업당 최대 규모인 1000억원 규모의 P-CBO를 신청했다.
다만 P-CBO에도 기안기금의 고용유지조건이 뒤늦게 적용되면서 비우량기업들의 입장이 난처해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기업은 모두 일정 규모 이상의 고용 총량을 유지해야 한다. 5월을 기준으로 대기업 전체와 일정규모 이상의 중견기업 총 2284개 기업이 이에 속한다.
고용총량유지 의무를 어긴 기업은 최대 연 1%의 가산금리가 부과된다.
업계 관계자는 “고용조건을 추가함으로써 정부차원의 기업 지원의 정당성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대부분 한계기업의 경우 구조조정을 좀 해야 정상기업으로 살아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현실적인 구조조정 수준 등을 고려한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기업지원이 유의미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