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증권사들의 유동성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실제 자본적정성 수준과 이를 측정하는 지표인 신NCR(Net Operating Capital Ratio·순자본비율) 사이의 괴리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2016년부터 금융당국이 도입한 신NCR이 구NCR(영업용순자본비율)보다 자본 적정성 정도를 덜 보수적으로 산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신용평가사(신평사)들이 구NCR 비중을 늘리면서 유동성 대응능력을 중점적으로 평가할 방침이다. 따라서 증권사들은 향후 위험자산·우발채무(우발사태 발생 시 채무로 전환) 등의 관리에 더 심혈을 기울일 전망이다.
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최근 몇년 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체투자 등 기업금융(IB)을 확장해 채무비중이 높아졌음에도 자본 적정성 수준은 양호한 이른바 ‘크레디트 버블’이 발생하고 있다.
신용등급을 보수적으로 산정하는 글로벌 신평사들의 국내 증권사 신용등급 평가와 국내 신평사들이 매기는 신용등급도 엇갈리고 있다. 국내 신평사는 안정적이라고 평가하는 신용등급이 글로벌 신평사에 가면 부정적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증권사들은 최근 금융당국이 자산건전성 규제 완화를 해줘 한숨 돌렸지만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다. 코로나발 유동성 위기로 IB 시장이 정체돼 있는 상황이며 장기적으로 구NCR을 고려한다면 신용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신NCR과 구NCR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며 이중 부담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미래에셋 1분기 채무보증 2000억원↑ …증권사 우발채무는 증가하는데 자산건정성은 안정적
금융당국은 2016년 증권사 건전성 규제 산정방식을 개편한 바 있다. 구NCR은 ‘총위험액(미리 예측해 계량화한 손실 규모)’ 대비 위험손실을 감안한 순자산 가치를 뜻하는 ‘영업용순자본’의 비율을 계산했다. 즉 영업용순자본이 총위험액보다 항상 크거나 같아야 했다.
반면 신NCR(순자산비율)은 자본에서 미리 위험액을 제한 ‘순자본’을 ‘업무 단위별로 필요한 자기자본(필요유지자기자본)’으로 나눠서 산출하는 방식을 택한다.
구NCR의 경우 120% 이상 150% 미만부터 자본 적정성 개선을 권고하지만, 신NCR은 50% 이상 100% 미만부터 이를 권고한다. 즉 수치가 낮을수록 재무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금융당국의 제재가 들어가는 기준을 낮춤으로써 생기는 투자 여력을 잘 활용하라는 취지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위험투자 비중을 늘리면서 수익성을 견인해왔다. 실제로 지난달 9일 한국신용평가는 초대형 증권사의 고위험 익스포져(리스크에 노출된 금액)가 지난해 127조7000억원으로 2015년에 비해 119%(69조3000억원) 증가했다고 밝혔다. 우발부채 규모 역시 동기대비 117%(19조5000억원) 늘어난 36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 폭주 등 코로나발 유동성 위기까지 더해지면서 증권사들의 내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해외부동산 투자에 집중해온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올 1분기 IB 등의 투자자산규모는 8조원으로 지난해 1분기에 비해 23%(1조5000억원) 늘었다. 채무보증도 4조4000억원을 기록하며 5%(2000억원) 증가했다.
이에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한국 증권사들에 대한 전망을 하향 조정하기 시작했다.
무디스는 지난달 8일 미래에셋대우(Baa2), 한국투자증권(Baa2), NH투자증권(Baa1), 삼성증권(Baa2), KB증권(A3), 신한금융투자(A3) 등 국내 6개 증권사를 신용등급 하향 조정 검토 대상에 올렸다. S&P는 지난달 9일 미래에셋대우의 신용등급(BBB+)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국내 신평사들은 이와 사뭇 다른 평가를 내놨다. 반면 한국기업평가에서 지난달 14일 매긴 미래에셋대우의 신용등급(선순위 회사채 기준)은 AA등급으로 ‘안정적’인 범위에 속했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지난달 29일 미래에셋대우의 신용등급을 AA등급으로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국내 신평사들이 이전에 주로 활용한 신NCR은 자기자본 규모가 큰 대형사들의 자산건전성을 높게 측정한다”며, “실제 크레디트 수준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즉 증권사의 위험자산 확대가 크레디트에 미치는 영향이 과소평가됐다는 설명이다.
■ 국내 신평사들 구NCR·유동성 평가 강화…삼성·메리츠 등 비은행계 증권사 특히 부담
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NICE신용평가 등 국내 신평사들은 신NCR에 구NCR 방식을 추가한 데 이어, 유동성 대응능력을 주요 평가요소로 삼으면서 증권사들의 크레디트 평가방식을 보완하고 있다.
NICE신용평가는 올 1월 자본적정성 평가요소에 구NCR을 추가한 데 이어 지난달 14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따른 신용평가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증권사의 성장성·수익성·안정성 중 안정성을 최우선 평가요소로 설정했다.
NICE신용평가 측은 “회사의 유동성 대응을 중점적으로 분석하면서 우발채무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진행할 것” 이라고 밝혔다. 즉 크레디트 평가에 있어서 위험자산의 비중을 신중하게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기업평가 역시 지난 3월 말 구NCR를 수정한 자본적성 지표를 내놨다. 특히 총위험액을 산정 함에 있어 PF대출 항목에 가중치를 뒀다. 또한 대형IB와 중소형 증권사 간의 평가방식을 분리했다. 즉 자기자본 규모가 큰 대형사의 자산건전성 지표 버블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국내 신평사들 가운데 구NCR을 적극 활용하면서 가장 보수적으로 자본적정성을 평가했던 한국신용평가 역시 지난달 13일 대형사들이 순이익과 위험자산을 반영한 자본적정성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국신용평가 측은 “증권사들의 유동성 대응능력, 이익안정성 저하, 자본적정성 훼손 등의 문제가 부각되는 경우 신용도 하향을 적극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증권사들 입장에서는 금융당국의 신NCR과 신평사들의 구NCR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
물론 금융당국이 지난달 19일 증권사의 신NCR 산정에 쓰이는 위험값 산정기준을 한시적으로 완화해줬지만 증권업계는 그 이후를 걱정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신평사들이 평가기준에서 구NCR 비중을 늘린다고 해서 바로 신용등급이 떨어지진 않지만 부담인 것은 사실”이라며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향후 위험자산·건전성 관리에 신경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삼성증권·메리츠증권 등 비은행계 증권사들은 금융지주계열사 증권사처럼 유상증자나 신용공여 등의 지원을 받기 어렵다. 유동성 대응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비은행계 증권사들의 자산건전성 관리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