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군 이야기 (22)] 군산 방공포대장① 육군과 공군 간의 소통 불가능성, 첫 지휘관 맡고 깨달아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0.04.26 07:27 ㅣ 수정 : 2020.04.26 07:27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된 방공포대원들, 공군에 대한 '오해'와 '편견'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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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군산 기지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부대장에게 신고를 하고 필자가 인수할  육군 발칸 포대로 향했다. 당시 육군 발칸 포대 지휘관인 김 모(某) 대위는 필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이날부터 필자는 육군 포대장과 같이 일주일 동안 포대 현황 파악 등 포대 인수 절차를 밟으며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轉軍)하는데 필요한 각종 업무를 수행했다.

 

인원, 작전장비, 개인화기 등을 비롯한 전투장구류, 차량, 탄약, 피복, 각종 문서 등등을 확인하고 인수인계서에 서명할 때까지 일주일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필자 혼자서 인사, 행정, 군수 등 모든 것을 확인하고 인수하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포대장실에서 [사진=최환종]
 

■ '폭풍'같았던 첫 일주일, 정시퇴근 꿈도 꾸지 못해

 

 

한번은 전군하는 포대원들에게 공군 피복류가 제대로 지급되었는지, 부착물은 제대로 부착되었는지 등을 확인해 보니, 일부 인원에 대한 공군 약정복 지급상태가 원활하지 않음을 발견했다. 비행단 군수참모에게 통보해서 조치를 요구했는데, 이런 식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필자가 세밀하게 확인해야 했고, 일주일동안 그 많은 업무를 하다보니 정시 퇴근은 꿈도 못꾸었다.

 

그러나 포대 인수 작업은 필자에게 주어진 명확한 임무였고, 사관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주어진 지휘관 업무였기에 필자는 피곤해도 즐거웠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하는 작업(각종 현황 파악 및 인수준비 등)을 하는데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폭풍같은 일주일이 지나고, 3월 초에 군산기지 항공기 주기장에서 부대장 임석하에 육군 발칸 포대의 공군 전군식이 엄숙한 분위기에서 실시되었다 (전군식은 각 비행단별로 실시되었다).
 
전군식을 마친 후 포대의 지휘권은 필자에게 주어졌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주어진 지휘관 임무! 4년 전, 소위 임관 후에는 그저 막연한 심정으로 강원도로 부임했지만, 이번에는 발칸 포대의 지휘관이다. 새로운 임무에 대한 기대와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다. (공군으로 전군이 되면서 포대의 정식 명칭은 방공포대로 명명되었다.)
 
전군식을 마치고 포대 간부들과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지난 일주일간 포대를 관찰한 결과 포대 간부들은 업무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사기, 군기, 장비 상태 등 전반적인 전투력 수준은 양호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 해는 ‘88 올림픽이 열리는 해였고 대비태세가 엄청 강조되었는데, 이에 필자는 최상의 전투력 유지’에 중점을 두고 포대 지휘방침을 하달했다.
 
■ 포대원들, "공군은 편한 군대"로 오인 / 수많은 훈시와 대화 통해 잘못된 생각 바로 잡아
 
당시 공군으로 전군한 포대 인원들은 120여명 이었고, 선임 소대장부터 방위병까지 모두 육군에서 근무하던 인원들이었다. 즉, 필자를 제외한 전 포대원이 육군에서 근무하던 병력인데, 처음 몇 달 동안은 필자와 포대원들 간에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용어 사용이라던가, 같은 사안인데도 바라보는 시각이나 해결 방법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그런 경우였다. 육군과 공군간의 문화적인 차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래와 같은 사례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즉, 포대장 취임 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포대원들의 공군에 대한 인식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포대장으로 부임한 지 1~2개월 후에 병사들로부터 ‘마음의 편지’를 받았다. 마음의 편지란 육군 시절부터 시행한 제도로서 부대 내에서 불합리한 점(구타, 가혹 행위 등)은 있는지, 건의사항은 있는지 등을 포대장이 병사들로부터 서면으로 받아보고 문제점이 있으면 시정하는 제도인데, 무기명으로 작성해서 제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내용 중에 황당한 내용들이 꽤 있었다.
 
예를 들면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공군이 되면 머리를 길게 기를 수 있고, 외출, 휴가도 마음대로 나갈 수 있고, 부대 생활이 편하고 등등 많은 병사들이 전혀 사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요약하면 공군은 무조건 편한 군대이고, 따라서 포대의 임무도 대충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점이었다.
 
그래서 병사들을 모아 놓고 교육을 했다. “여러분이 공군으로 전군한 배경은.....(중략), 공군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같이 무조건 편하기만 한 군대가  아니다. 당연히 공군에도 전투력 유지를 위하여 지켜야 할 규정이 있고, 훈련 요구량이 있다.... (중략). 여러분이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했지만 임무 수행에는 변한 것이 없다... 등등” 일장 훈시를 해도 즉각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는 필자가 강원도에서 근무할 때 겪었던 추위, 폭설, 강풍, 물부족 등을 얘기하면 “설마 공군에서 그럴 리가. 육군에서도 그런 부대 얘기는 못들어봤는데...” 이런 반응이다. 우물안 개구리가 따로 없었다. 아무리 후방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라지만 답답했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주기적인 반복교육과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정리되었다.
 
■ 방공포대 간부들도 기본 이론에 대한 이해 부족해 / 고생끝에 발칸포 사격 통제시스템 완박하게 습득
 
한편, 포대의 주 화력장비인 발칸포는 20mm 탄을 사용하는 화포이면서 레이다를 갖춘 전자장비이기도 하다. 육군 방공포병학교에서 20mm 발칸에 대해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교실에서 배운 것과 실제 장비를 운영하는 것은 차이가 난다.
 
육군 방포교에서 배운 것을 염두에 두고 포대 간부들과 발칸포 관리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니, 많은 간부들이 레이다 관리 및 운용에 대하여 부담을 갖고 있었고(기본적인 레이다 이론을 잘 모르고 있었다), 사격시 발칸포의 사격통제 컴퓨터에 입력하여야 할 제 요소(외부 온도, 공기 밀도 등)들에 대하여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다.
 
필자는 강원도 부대와 오산기지에서의 업무가 레이다 관리(정비)이었던 만큼 레이다에 관한 기본적인 이론은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정비 부사관과 토의 및 실제 장비를 보면서 공부한 결과 발칸 레이다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격통제 컴퓨터는 발칸포 진지에 나가서 교범을 보면서 좀더 세부적으로 공부를 했고, 모르는 것은 팬텀(F-4) 조종사들에게 물어보면서 궁금증을 해소했다. (팬텀기에도 20mm 발칸포가 장착되어 있고, 이를 운용하는 조종사들은 발칸포의 사격통제 시스템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발칸 사격을 앞두고는 육군 지원선 부대의 담당 부서를 직접 찾아가서 수리부속 확보를 요청하고, 당장 필요한 부속을 확보했다. 이런 식으로 포대의 주 화력장비인 발칸포 운용/정비 개념을 숙지하고 포대원(간부/병사)들을 장악하면서, 발칸포대 근무 경험은 없었지만 필자의 포대지휘는 빠른 시간내에 궤도에 올랐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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