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0.04.20 14:47 ㅣ 수정 : 2020.04.20 14:47
육군방공포사령부의 공군 전군 '문서' 하달, 군생활의 전환점 포착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그러던 중, 그 해 가을에 공군본부에서 필자의 진로를 바꾸게 되는 문서가 하달되었다. 즉, “내년에 비행장에 배치되어 있는 육군 대공포 부대가 공군으로 전군된다. 이에 대공포 부대 운영 요원으로 근무할 지원자를 받는다.” 라는 내용의 문서였다. 선발되면 ‘대공포 운영 요원’으로 특기가 바뀌는 것이다.
문서를 받아보고는, 주위의 동료, 선배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의견을 들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대공포 부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기에 선뜻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선배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내년에는 대공포 부대가 공군으로 소속이 바뀌고, 몇 년 후에는 육군 방공포사령부 전체가 공군으로 전군한다더라.” 물론 당시 이 얘기가 근거가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얘기가 실현된다면 지금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며 주사위를 던지다
필자는 특기 변경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검토했다. 오산 기지로 부임한 이후 가끔 ‘회의’를 느끼면서 ‘강원도 부대와 오산기지에서의 통신 장교 생활을 고려해볼 때 과연 내가 통신 장교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금년 같은 생활이라면 미래가 없었다.
심사숙고 끝에 결론을 내렸다. 물론 위험부담은 있겠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특기 변경을 신청하자!!! 그리고 정비과장과 처장에게 ‘특기변경 신청’을 보고했다. 그때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동료 한 명도 같이 특기변경 신청을 했다. 한 사무실에서 두명의 장교가 특기변경을 신청하자 정비과장과 처장은 적잖게 당황했던 것 같다. 왜 그러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그리고 필자를 설득하려 했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처장이 결재를 했고, 문서는 공군본부로 올라갔다. 이후에도 몇몇 선배들이 필자를 찾아와서 ‘특기 변경 신청 철회’ 설득을 했다. 필자가 특기 변경을 할 경우에 필자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면서, 지금은 상황이 어렵지만(당시 선배들은 필자의 상황, 즉 중령 과장과 대위 선임장교간의 일방적으로 불합리한 관계는 모두들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이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등등의 얘기를 하면서.
후배를 아끼는 마음에서 걱정해줬던 그분들에게는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상태였다. 그해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특기 변경 명령이 하달되었다.
특기변경 명령이 하달된 그날부터 육군 방공포병학교로 ‘방공포병 교육’을 받으러 갈 때까지 약 2~3주간은 일과 시간 이후에는 과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과장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아무 말도 안했다(안한게 아니라 못했을 것이다). 오산기지로 부임한지 거의 1년 만에 정상 퇴근을 했고, 퇴근 후에 동기생, 선후배들과 만나면서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해 1월 초순의 어느 날, 육군 방공포병학교로 특기교육을 받기위해 입과했다. 당시 선발된 대공포 운영요원은 다양한 특기에서 선발이 되었고, 소위부터 중령까지 각 계급별로 분포되어 있었다. 이때 육군 방공포병학교에서 교육받은 인원들이 몇 년 후에 육군 방공포병사령부가 공군으로 전군하게 되면서 ‘공군 방공포병사령부’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당시 교육을 받던 위관 장교 중 여러 명이 훗날 장군으로 진급하였다.
육군 방공포병학교에 입과한 우리는 잘 짜여진 교육 일정에 따라서 새로운 교육 내용에 집중했다. 모두들 육군 대공포 부대 인수 요원이라는 책임감에 열심히 공부했다. 다만 학과장과 숙소여건은 좋지 않았는데, 학과장은 연병장 한구석에 설치된 비닐하우스 안이었다. 거기서 교육을 받았고 숙소는 학교 인근의 여관을 이용했다. 그러나 아무리 여건이 열악하더라도 강원도 부대에 비하면 모든 것이 호텔 수준이었다. 우리는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진 학과장을 ‘닭장’이라고 불렀고, 그 ‘닭장’ 안에서 교육받은 초창기 소수 인원들은 대공포 최초 인수요원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끈끈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군생활을 같이 했다.
■군산 비행장 발칸 포대장으로 부임, 막중한 책임감과 기대감이 교차
약 0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근무지가 분류되었다. 필자는 중서부 지역의 ‘군산’ 비행장 발칸 포대장으로 결정되었다. 군산이라. 지난해에 오산기지에서 근무하면서 예하 부대에 헬리콥터를 타고 출장갈 때, 헬리콥터가 잠깐 들렸던 곳이다. 그 이외에는 군산에 가본 적이 없다.
4년 전에는 임관하자마자 전투복에 군용 잡낭을 둘러메고 그저 막연한 심정으로 강원도로 부임했지만, 이번에는 마음 자세가 다르다. 육군 대공포 부대를 인수하는 동시에 그 부대의 지휘관으로 가는 것이다. 막중한 책임감이 어깨를 눌렀지만 새로운 임무에 대한 기대로 마음은 가벼웠다.
공군본부에서 신고를 마치고 군산으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공군 장교 정복에 여행용 가방을 들고! 군산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부대 정문 앞까지 갔다. 택시에서 내려서 가방을 들고 정문으로 가려는데 한 미 공군 병사가 경례를 하며 가방을 들어 주겠다고 한다. 참고로 오산, 군산 기지는 한미 합동 공군 기지로서, 건물은 다르지만 한국군과 미군이 같이 근무하며 서로 긴밀하게 협조를 한다.
■첫 날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처럼 잠들어
후에 군산 기지에 근무하면서 느낀 점은 군산기지가 오산 기지보다 작아서 그런지 한.미 간에도 가족같은 분위기였다(그 당시에는 그랬다). 아마도 그래서 더욱 그 미군 병사가 부대정문 앞에서 장교 정복 차림에 가방을 들고 있는 필자에게 경례를 하며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했는지 모른다. 아무튼 군산 기지에 도착한 순간부터 기분이 상쾌했다.
정문에서 부대 당직계통에 필자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즉시 차량이 나왔고, 미리 준비된 장교숙소로 향했다. 당분간 필자의 직속상관이 될 모(某) 소령이 필자를 반갑게 맞으며 부대장 신고는 내일 아침이니 오늘은 푹 쉬라고 한다.
그날 밤은, 푹신한 침대에서 앞으로 다가올 업무를 생각하며 기분좋게 잠이 들었다. 마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알프스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간 첫날 별을 보다가 잠들었듯이.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