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독서법 (2)] 블랙스완② 최태원 SK회장의 ‘사명 변경’에 담길 두 마리 블랙스완은 '기업비밀'
이태희 편집인 입력 : 2020.04.08 07:03 ㅣ 수정 : 2020.04.08 07:03
‘9.11테러’나 ‘금융위기’는 부정적 블랙스완 vs 포식자된 온라인 유통기업은 긍정적 블랙스완
[뉴스투데이=편집인 이태희]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경영철학인 ‘딥체인지’는 일종의 '긍정적 블랙스완' 대응전략이다. 나심 탈레브에 따르면, 블랙스완은 두 종류로 나뉜다. 테러조직 알카에다에 의한 9.11테러나 금융위기 같은 '부정적 블랙스완'은 순식간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건설보다 파괴가 쉽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반면에 '긍정적 블랙스완'은 작은 변화들을 천천히 축적시킴으로써 출현한다. 물론 그 출현은 돌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수 년 혹은 수십 년 간 동일한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진 데 따른 결과물이다. 이는 ‘블랙스완’의 핵심 개념과 모순된다. 블랙스완은 그동안 진행돼온 역사나 사건과는 정 반대 방향에서 출현하는 현상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긍정적 블랙스완은 일종의 자기 모순이다. 하지만 탈레브는 이렇게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의사결정에 대한 작은 규칙을 말해보자. 나는 긍정적 블랙스완에 노출될 수 있을 때에는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긍정적 블랙스완은 피해가 적다. 반면에 부정적 블랙스완의 위협을 받을 때에는 아주 보수적이 된다. 나는 설명틀의 오류가 득(긍정적 블랙스완)이 될 때에는 아주 공격적이 되지만, 오류가 해(부정적 블랙스완)를 입힐 때에는 피해망상이 될 정도로 극도로 조심한다.”
긍정적 블랙스완은 잘못 파악을 해도 피해가 적거나 득이 되는 데 비해 부정적 블랙스완은 엄청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벤처투자는 어차피 위험성이 겉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소액만 투자한다. 잘못돼도 손실액은 적다. 블루칩 종목은 위험이 숨어있다. 거액을 투자하기 쉽다. 따라서 블루칩 종목에서 블랙스완이 출현하면 그 손실은 막대하다.
탈레브는 부정적 블랙스완 현상에 집중한다. 하지만 부정적 블랙스완은 어차피 예측하거나 대응하는 게 불가능하다. 무기력하게 당하는 수밖에 없다. 탈레브가 목에 힘을 주고 블랙스완이 역사나 경제를 움직여왔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무기력하기는 우리들과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블랙스완을 탈레브가 예측했을 가능성은 0%이다. 블랙스완은 철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결코 진리나 본질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의 일종이다. 우리보고 어쩌라는 얘기인가. 탈레브의 지적 자만심과 공격본능을 과시하는 도구일 뿐이다.
■ 파레토의 법칙은 ’흰 백조‘, ’롱테일 법칙‘은 ’긍정적 블랙스완‘
따라서 현실 속 시장경제 참여자들에게는 ‘긍정적 블랙스완’이 더 유용한 개념이다. 평균값을 관찰하는 인간의 이성과 분석력을 동원하면 사전에 관찰해서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탈레브는 긍정적 블랙스완의 사례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지 않고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막대한 판매고를 올리는 책 등을 꼽는다. 이는 크리스 앤더슨의 ‘롱테일의 법칙’을 연상시킨다. 전통적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상위 20% 인기상품(헤드)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파레토의 법칙이 지배한다. 반면에 아마존 같은 온라인 유통이 발달하면서 80%의 비인기상품(롱테일)이 20%의 인기상품보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준다는 게 롱테일 법칙이다.
파레토의 법칙은 ‘흰 백조’인 데 비해, 롱테일 현상은 블랙스완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긍정적 블랙스완이다. 과거의 통념인 파레토의 법칙을 파괴하지만, 관찰을 통해 예측가능하다. 온라인 상거래가 유통시장을 지배함에 따라 수많은 ‘비인기상품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되는 추세는 상당한 시간을 두고 동일한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스마트폰과 같은 혁신제품이 시장을 장악해온 과정도 관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 블랙스완에 가깝다. 노키아가 퍼스트무버(first mover)였으나 너무 빨라 실패했던 데 비해 패스트 세컨드(fast second)인 애플은 대성공을 거뒀다. 긴박하게 뒤따라 나선 추격자인 삼성전자는 애플의 강력한 경쟁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스마트폰이라는 긍정적 블랙스완이 시장을 지배해나가는 과정은 시장의 참여자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진행된다. 누가 효율적으로 대비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엇갈릴 뿐이다.
■ SK텔레콤의 ‘새 이름’이 관심을 끄는 이유, 두 가지 '기업비밀' 반영돼
최태원 회장이 역설해온 딥체인지는 거대한 전환 앞에서 근본적 변화를 실천하지 못한 기업은 더 이상 생존과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그 거대한 전환은 돌발적 사태가 아니다. 장기간 동일한 방향으로 지속되고 있고 관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 블랙스완’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최 회장이 파악한 긍정적 블랙스완은 두 가지이다. 우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만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온라인의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된데 따른 필연적 현상이다.
획기적인 기술력이나 혁신제품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오프라인 시대의 수십 배, 수백 배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그 과실은 소수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다수의 시장경제 주체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가치 독점의 중심에 서 있는 글로벌 대기업은 공존과 분배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천할 때만 시장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최 회장의 인식인 것으로 풀이된다. 즉 아담 스미스가 기업의 유일한 목적으로 지목한 ‘이윤추구’는 흰 백조이고, 최 회장이 설파하는 ‘사회적 가치’는 긍정적 블랙스완이다.
딥체인지의 두 번째 포인트는 융복합이다. 기술격변으로 시장은 언제나 요동치는 상태이다. 이제 “한 우물을 파라”는 격언은 죽으라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오프라인 대형매장을 경쟁력으로 내세워 승승장구했던 유통기업들이 불과 수 년 만에 온라인 유통의 강자들에게 짓눌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 현상은 단적인 사례이다.
국내 대형 유통기업의 대척점에 아마존이 서 있다.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은 유통, IT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인수합병(M&A)을 한 결과 글로벌 시장의 포식자로 성장해 버렸다. 한 우물을 판 유통기업은 흰 백조이고, 무차별적인 융복합을 성공시킨 아마존은 긍정적 블랙스완이다.
최 회장은 이 같은 딥체인지에 대응하기 위한 주요 계열사 사명변경을 주문한 상태이다. SK텔레콤, SK건설 등과 같은 주요 계열사들이 어떻게 이름을 바꿀지는 시장의 관심사이다. ‘새 이름’에는 기업비밀이 담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명의 행간을 읽어보면 그들이 추구할 ‘융복합의 방향’과 ‘사회적 가치’ 실천 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