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금융지주사, 채안·증안펀드 선심에 이중 부담?
[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최근 금융당국이 시중 금융회사의 채권·증권시장안정펀드 조성 방침을 발표하면서 금융지주사의 자금 분담 방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4일 제2차 비상경제회의를 개최하고 100조원 규모의 ‘코로나19 관련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최대 20조원과 증권시장안정펀드(증안펀드) 10조7000억원을 조성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채안펀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처음 도입된 것으로, 채권시장의 경색으로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에게 유동성을 지원해 국고채와 회사채 간 과도한 스프레드를 좁혀 시장을 안정시키기는 역할을 한다.
시중 금융회사들이 펀드 규모(2008년 당시 10조원)를 약정하고 필요 시 펀드를 통해 회사채 등을 매입해 채권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같은 시기 증안펀드 역시 증권 유관기관들의 자금 출연을 통해 증시 안정을 도모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이번 채권·증권시장안정펀드의 경우 최대 조성금액 약 30조원 중 80%(24조원)를 민간 금융회사(은행·보험사·증권사 등)가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5대 금융지주사(KB·신한·농협·우리·하나금융)는 채안·증안펀드에 이중으로 투자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채안펀드의 조성은 주로 은행이 맡는 만큼, 증권·보험·카드사 등이 증안펀드 자금 출연에 앞장서야 은행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비은행 부문 비중이 높은 KB·신한금융은 증권·보험·카드사 등이 증안펀드 투자에 앞장서는 한편, 은행이 주력인 농협·하나·우리금융은 계열사가 공동 부담하거나 은행이 부담하게 될것으로 전망된다.
■ 비은행 부문 강한 KB·신한금융지주…증권·보험·카드사 등에서 투자 분담
2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10조 규모 채안펀드 중 시중은행 4조7200억(47.2%), KDB산업은행 2조(20%), 생명보험사 1조7800억(17.8%), 증권사 및 증권유관기관 9300억(9.3%), 손해보험사가 5700억(5.7%)을 분담할 예정이다. 최대규모인 20조로 증액시 은행은 총 9조4400억원의 자금 출연을 부담해야 한다.
또한 증안펀드 10조원은 5대 금융지주 5조, KDB산업은행 2조, 업권별 주요 금융회사(보험사 및 증권사)가 3조씩 분담하게 된다. 다만 5대 금융지주가 일괄적으로 1조원씩 부담할 가능성은 낮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가 금융지주사의 자산규모를 고려해서 투자금 부담 비율을 차등화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자산규모가 큰 KB금융과 신한금융이 각각 1조원을 초과하는 금액을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KB·신한금융이 증안펀드 투자금을 분담할 방식도 눈길을 끈다. 두 금융지주는 비은행 부문 포트폴리오가 강한 편이기 때문에 증안펀드 자금 출연은 해당 계열사들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은행은 채안펀드 투자금만 부담하면 되는 것이다.
KB금융은 2019년 3분기 기준 종속회사 총 자본규모(43조9005억원) 중 65.2%를 차지하는 국민은행을 제외하고 KB증권 10.7%, KB손해보험 9%, KB국민카드 9.1% 순으로 가용 자본이 많다. 세 계열사가 거의 동등한 수준의 자본을 갖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신한금융 역시 같은 시기 신한은행이 종속회사 총 자본규모(43조6360억원) 중 59.3%를 차지하는 한편, 신한카드 13.8%, 신한금융투자 9.7%,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 7.5%, 신한생명 4.9% 순으로 가용 자본이 많다.
특히 신한금융은 올초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을 완전자회사로 편입하면서 비은행 부문 강화에 집중한 바 있다.
앞선 관계자는 “비은행 부문의 포트폴리오가 강한 금융지주사는 은행과 계열사가 자금 출연 부담을 고루 나눌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 은행 주력 지주사…하나 미정, 우리 은행단독 부담, 농협 계열사 공동 분담
반면 농협·하나·우리금융은 은행 주력 지주사이기 때문에 증안펀드 투자금 출연 방안을 다양하게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농협금융의 경우, 작년 3분기를 기준으로 종속회사 총 자본규모(27조4103억원) 중 농협은행이 60.8%, NH투자증권이 19.4%, 농협생명보험이 13.8%, 농협손해보험이 3.1%의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NH투자증권의 경우 농협금융의 지분율이 49.1%인 것을 감안하면 자본 운용의 자율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농협금융지주 관계자는 자금 분담과 관련해 “자본규모가 큰 계열사들을 중심으로 자금을 분담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나금융은 작년 3분기 기준, 종속회사 총 자본규모(33조4327억원) 중 하나은행이 76.2%를 차지흔다. 하나금융투자는 10.3%, 하나카드 4.9%, 하나캐피탈이 3.2%를 차지하고 있다. 하나생명보험이 있지만 자본규모가 1%에 그친다.
자금 출연과 관련해 하나금융지주 관계자는 “아직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했다.
한편 우리금융은 지주사 중 은행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2019년 3분기 종속회사 총 자본규모(24조4304억원) 중 우리은행의 비중은 90.3%에 달한다. 우리카드는 7.2%, 우리종합금융주식회사 1.4%, 우리자산운용주식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0.4%에 그친다.
우리금융지주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증안·채안펀드 투자금을 전사적 차원으로 보고 우리은행이 단독으로 부담할 방침이다. 보험사 등을 통해 분담할 수 있는 타 지주사와 비교했을 때 우리은행의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