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증시 급락에 'ELS 마진콜’ 폭주 어떡하나
한은 국고채·RP 매입 효과 미지수…“국내 기관투자자 체질 개선해야”
[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최근 해외증시 급락으로 국내 증권사들이 발행한 해외 주가연계증권(ELS)의 기초지수가 폭락하면서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이 폭주하고 있다.
이에 국내 증권사들이 기업어음(CP) 등 단기 채권을 대거 매도하면서 금리가 급등하는 등 원화자금 시장이 마비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은행은 지난 20일 1조5000억원 규모의 국고채, 23일에는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추진키로 하는 등 긴급 조치를 내놨다.
그러나 원화자금 시장 마비가 풀릴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따라서 증권사에 유동성을 긴급 수혈하는 단기적 조치에 더해 국내 연기금 등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의 주식 수요 기반을 확대하는 등의 장기적 체질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해외 증시 폭락·환율 상승까지 악재 겹쳤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대표적인 해외증시에 속하는 유로스톡스(EU Stoxx) 50 지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 등 해외증시가 일제히 폭락했다.
특히 유로스톡스 50은 2월20일부터 지속적인 하락세를 기록하며 지난 20일 33.34% 떨어졌다.
이처럼 글로벌 증시가 한 달만에 고점 대비 30~40% 급락하면서 해외 기초자산(주가지수)이 기준가 대비 초과 하락하게 됐다. 해외 ELS 상당수가 손실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직접투자 방식의 자체 헤지(위험회피) 비중이 높은 대형 증권사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국내 대형 증권사의 자체 헤지 계정 규모는 2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한 증권사에는 하루에 마진콜이 1조원 가량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금융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수익 확대를 위해 외국계 투자은행에 위탁하지 않고 ELS 자체 헤지 규모를 늘린 것이 리스크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외국인 자금 이탈에 민감해진 국내 주식시장 환경 등의 구조적 요인과 맞물려 원화자금 시장의 마비까지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의 원화 트레이딩도 저조해지면서 국내 증권사들이 대거 매도하는 CP를 시장이 받아줄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환율상승과 같은 상황적 요인까지 더해졌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이전엔 원화 채권 담보도 가능했던 것과 달리 해외 증권사들이 마진콜 담보로 달러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타 금융기관보다 달러 보유율이 낮은 증권사가 CP·RP 등을 팔면서 달러를 확보하고, 이는 다시 원화자금 시장의 마비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펼쳐졌다.
■ 증권사 유동성 공급에 더해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 기반 확대 목소리도
금융권에서는 원화자금 시장의 마비를 풀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자체 헤지 증권사 입장에서는 마진콜에 응하지 못하면 채무 불이행에 빠지기 때문에 CP 매도를 통한 달러 매입을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지난 20일 1조5000억원 규모의 국고채 단순 매입 결정을 했다. 국내 안전자산인 국채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조치다. 대상 증권은 만기 3년, 5년, 10년짜리 국고채권 5종이다. 한은은 지난 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채권시장이 출렁이자 국고채 1조5000억원어치를 매입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23일에는 증권사 RP도 매입하기로 발표했다. RP매입 대상 기관은 현행 5개 RP 대상 비은행기관(한국증권금융, 삼성증권, 미래에셋, NH투자증권, 신영증권)이다. 이외에도 통안증권 대상 증권사 7곳 및 국고채전문딜러(PD)로 선정된 증권사 4곳 등을 RP 매입 대상 기관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24일에 기일물(14일물 또는 28일물) RP 매입을 실시할 예정이며 전체 매입 규모는 아직 미정이다.
그러나 증권업계에서 이번 RP 매입 조치가 사실상 큰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매입대상 증권이 주택저당증권(MBS) 등인데, 이 증권들은 기존의 방법으로 기관간 RP에서 담보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국내 연기금 등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의 주식 수요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이 외국인 자금 이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관투자자 기반을 확대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금융업계 관계자는 “외국의 연기금은 전체 주식투자 비중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 연기금은 투자 효율성이 낮은 편”이라며, “연기금의 투자여력이나 효율성이 높았다면 이번 상황에서 증권사를 따라 CP를 대거 매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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