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⑥ LIG넥스원의 ‘불가항력’ 징벌하는 지체상금 개선해야
부품 조달하는 ㈜한화의 폭발사고로 체계종합업체인 LIG넥스원 손실 감수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부터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편집자>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해 2월 14일 ㈜한화 대전사업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한화 대전사업장은 대전지방 고용노동청의 지시에 따라 가동이 중지됐고, 여기서 만드는 탄두와 유도무기 추진체 등 부품을 납품받아 천궁 등 유도무기를 생산하는 LIG넥스원은 2개월 이상 공급이 중단되면서 정부 납기일을 맞추지 못했다.
결국 LIG넥스원은 ㈜한화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인해 부품이 제 때 공급되지 않아 지체상금을 물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지체상금은 업체가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상 의무를 기한 내에 이행하지 못하고 지체했을 때 손해배상금 성격으로 징수하는 금액이다. 일일 지체 시 계약액의 0.075%만큼 방위사업청이 부과한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유도무기의 경우 체계가 복잡하여 여러 업체에서 부품을 만든 뒤 체계종합업체가 조립한다”면서 “㈜한화 대전사업장은 탄두, 추진체 등을 만드는 공장이기 때문에 다양한 방산업체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어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IG넥스원은 지난해 7월 24일 열린 '방산업체 CEO 간담회'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게 ㈜한화 대전사업장 폭발사고처럼 업체가 통제 불가능한 사유로 납품이 지연되면 지체상금을 면제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당시 정 장관도 업체의 어려움을 공감한다면서 적극 검토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장관의 긍정적인 답변이 있었음에도 이후 방위사업청 실무자들은 “폭발사고의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며 납기 수정 요청과 지체상금 부과 면제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그러면서 업체가 지체상금에 대한 보증보험을 들게 만들어 이를 근거로 대금을 지불하고 있다. 즉 귀책사유가 명확한 사안도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 지체상금 소송 63%는 방위사업청의 판단 오류로 드러나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사업지연 원인제공자가 발주기관일 경우에도 지체상금을 업체가 물어야 하는 등 지체상금은 수년간 방산업체들을 괴롭힌 대표적인 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무법인 (유)로고스가 2018년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지체상금 관련 소송 16건을 분석한 결과 10건은 방사청이 패소하여 지체상금 면책 내지 감액 조치가 이뤄졌다.
즉 소송 건의 약 63%는 방사청이 잘못 판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이유는 방위사업관리규정에 지체상금 면제 사유가 매우 추상적으로 규정된 데다, 계약담당 공무원이 정부에 유리하게 규정을 해석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라고 이 연구는 주장했다. 결국 손해배상 예정의 법적 성격을 가진 지체상금은 법원이 재량으로 감액할 수 있어 소송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방사청은 방산업계의 권리 구제를 위해 지난해 4월 판사 경력을 보유한 법률전문가 등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옴부즈만 지체상금 심의위원회를 발족했다. 지난해 10월 22일 이 심의위원회는 첫 심의를 통해 A사가 면제 요청한 지체상금 중 90% 이상을 감면하도록 시정을 요구했고, 방사청 해당 부서는 이를 받아들여 최초의 감면 사례가 나왔다.
방사청 계약관리본부장을 역임한 한 전문가는 “그동안 소송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었던 지체상금에 대한 이의 제기가 옴부즈만 지체상금 심의위원회를 통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라면서 “이번 결정 과정이 향후 지체상금 문제를 해결하는데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한국방위산업진흥회가 지난해 1월 방사청에 제출한 정책건의서에 의하면, 2017년 방사청이 징수한 지체상금은 2,646억 원으로 전년(1,079억 원)의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한 방산업체 임원은 “현재 지체상금을 부과 받고 소송 중인 업체들이 옴부즈만 지체상금 심의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방사청이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지체상금 면제 및 감면 사유 구체화한 규정 개정 이뤄져야
방위사업 관련 법규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옴부즈만 지체상금 심의위원회를 통한 해결도 좋은 접근이지만, 궁극적인 해결 방안은 지체상금 면제 및 감면 사유를 상세히 규정해 실무자가 충분히 판단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실무자 선에서 필요한 조치가 제 때 이뤄지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공무원이 성실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책임을 면제하는 ‘적극행정 면책제도’를 잘 활용하여 공무원들의 행정 서비스가 적기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면서 “현재는 책임만 모면하려는 소극적 행정으로 일관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며, 업체는 지체된 만큼 인건비 등 고정비용도 증가해 이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의견들을 종합해볼 때, 우선 옴부즈만 지체상금 심의위원회를 통한 전문적 판단을 수용하고 적극행정 면책제도 적용으로 담당 공무원의 책임을 완화하면서 관련 규정을 구체화하는 개정 노력이 더해진다면 그동안 방산업체를 힘들게 만든 지체상금 문제는 원만히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방위사업청의 적극적인 실현 의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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