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윤혜림 기자] “집순이도 자발적일 때가 좋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젊은 직장인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직장인의 꿈은 집에서 일하기이다. 출근시간에 쫓기면서 지옥철에 시달리지 않고 편한 옷차림으로 일상의 여유를 즐기면서 돈도 버는 모습은 상상만해도 풍요롭다. 하지만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인해 CJ그룹·SK그룹 삼성·LG(임산부 대상)등과 같은 대기업과 네이버·카카오 등의 주요 IT 기업은 물론 벤처기업들도 재택근무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요즘, 약간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앱을 살펴보면, 재택근무 중인 직장인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재택근무의 여유로움을 과시하는 의견과 일터로서의 집은 당초 생각처럼 ‘낙원’은 아니라는 주장 등이 맞서 있다.
대기업과 일류 IT기업 중심의 재택근무 풍속도 VS. 중소기업은 소외
“아직도 재택근무 안하는 회사 있어?” VS. “단어자체가 허황된 사치”
물론 재택근무에 대한 자부심을 은근히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A씨는 “아직도 재택근무를 안하는 회사가 있어?”라고 반문했다. 재택근무가 주로 대기업이나 판교에 소재한 일류 IT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의식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 19는 한국사회의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될 정도이다. 대부분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임직원들은 생존위기에 처해있다. 재택근무라는 단어는 ‘남의 나라’소식일뿐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국내 3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지난달 25∼26일 실시한 ‘코로나19 관련 중소기업 경영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70.3%가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영상 타격을 받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 중소기업 임원은 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회사 문을 닫을지 걱정해야 하는 판국에 집에서 근무할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허황된 사치’이다”면서 “자고로 큰 재앙이 오면 부자들은 여유를 갖고 버틸 수 있지만 서민들은 생과 사를 오가게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재택근무 시스템 마련한 회사측 역량에 대해 은근한 자부심 드러내
개별기업의 대응을 넘어서는 코로나 19 극복과정이라는 인식도 나타나
B씨는 “이번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끔 시스템을 마련했다는 거 자체가 놀랍다. 남의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이런 비상근무체제를 준비한 직원들에게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이번 기회에 비상상황에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끔 더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정비하고 확대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에서 일을 해도 업무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사측이 체계적으로 사전준비를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B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재택근무가 회사 경영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면 해당 기업의 전반적 역량이 뒷받침돼야 하는 셈이다.
C씨는 “최근 마스크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고 출퇴근길엔 많은 사람들과 접촉해서 불안했는데 재택근무를 하게 돼서 좋다. 밥을 같이 먹거나 기침을 하는 것만으로도 코로나19가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전반적으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재택근무가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택근무가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인 셈이다. 즉 재택근무가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코로나 19를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본 것이다.
퇴근시간에 로그아웃 못하게 막는 ‘구태’ 팀장들도 나와
반면에 재택근무에 대한 불만도 발견된다.
D씨는 “재택근무를 하니 출퇴근의 경계가 없어져서 근무 이외 시간이나 주말에도 업무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사내 메신저를 이용하는데 퇴근시간에 로그아웃을 하려고 해도 팀장님이나 부장님이 눈치를 주셔서 항시 대기하고 있다. 오히려 근무시간이 연장되니 스트레스 받는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재택근무를 계기로 흔들리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이다. 팀장이나 부장이 재택근무로 인해 업무성과가 떨어질 것을 걱정해서 팀원들을 불필요하게 닥달하는 구태가 되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말 한마디면 끝날 일에 장문의 메시지 보내, 쌓여가는 업무
한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E씨는 재택근무가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 2월 중순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했던 때부터 재택근무를 했던 그는 업무 처리가 늦어지며 쌓여가는 일에 한숨만 내쉰다.
E씨는 “처음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재택근무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단순히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너무 좋았다. 그런데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업무 진행 속도가 너무 느리고 각자 업무 분담이 잘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메신저를 통해 팀원들과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한두 마디 말로 해결될 일을 장문의 메시지나 메일로 전달해야 하니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거래처와의 약속도 줄줄이 취소되는 바람에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미뤄지고 있어서 큰 고민이다.
E씨는 “원래는 2월 말까지만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는데, 회사에서 기한을 연장한다고 지침이 내려왔다. 우리 같은 경우는 팀 단위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편이라 의사소통이 어려운 점이 힘들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람 간의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업무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어 오히려 회사에 가고 싶어하는 역설적인 현상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카페로 출근하다보니 재택근무 취지 흐려?
카페에서 공부하는 데 익숙한 청년세대의 경우 재택근무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대학시절부터 집이나 도서관보다는 스타벅스 등과 같은 카페에서 공부하는 데 길들여진 90년대 생은 집에서 업무 효율이 오르지 않자 인근의 카페를 찾는 경우가 발생한다.
모 IT기업 직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고등학교 시절에 수능과 내신을 대비할 때부터 동네의 카페에서 공부하는 게 습관이 됐다”면서 “며칠전부터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작업 능률이 오르지 않아 동네의 단골 카페에서 일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상사의 구속을 받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기는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회사 사무실이 더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면서 “내가 재택근무의 취지를 흐리는 느낌”이라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