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극복해야 할 최우선 과제 중 하나는 갈수록 심화되는 수도권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 상공인, 자영업자간의 격차 문제다. 이런 가운데 주목되는 것이 지역에서 시도되고 있는 창조도시 혁명이다. 지난 20년간 지역발전에 의미있는 성과를 꼽자면 서울 강북과 지역도시 골목상권, 제주 지역산업(화장품,IT) 강원 지역산업(커피, 서핑)이다. 그 주역은 창의적인 소상공인으로 자생적으로 지역의 문화와 특색을 살리고 개척해서 지역의 발전시켰다. 이제, 이들 ‘로컬 크리에이터(Local Creator)’가 지역의 미래이자 희망으로 부각되고 있다. 각각의 지역이 창조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육성과 활약이 필수적이다. 뉴스투데이는 2020년 연중 기획으로 지난 2015년 네이버가 만든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도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혁명의 현장을 찾아 보도한다. <편집자 주>편집자>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성과 연결된 고유의 콘텐츠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소상공인이다. 자신만의 콘텐츠(공간, 기획, 문화, 커뮤니티, 디자인 포함)가 가치창출의 핵심이다.
여기에는 예술, 문학, 영화, 영상, 디자인 등 전통적인 콘텐츠 생산자 뿐 아니라 다름 사람들의 콘텐츠를 공간, 컨셉, 비즈니스 모델로 기획하는 사업자도 포함된다. 보통 크리에이터와 달리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문화와 특성을 소재로 활용하거나 지역에서 커뮤니티와 고객층을 구축하는 사업방식을 추구한다.
▶지역 콘텐츠로 새로운 가치 창출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산업통계상 로컬 크리에이터는 소상공인으로 분류된다. 대부분이 골목산업, 문화산업, 창조산업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이들 산업의 소상공인 현황을 통해 로컬 크리에이터 산업의 규모와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다.
2005년에 처음 방영된 SBS ‘생활의 달인’은 오랫동안 한 분야에 몸 담은 소상공인들을 소개해왔는데, 대부분 1세대 골목 창업자들이다. 이 프로그램의 작가가 방송에 나온 전국의 유명 소상공인 20명의 장사철학을 소개했는데, 20개의 가게중 12개가 가업을 물려받아 장인정신과 철학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8개 가게 중 독립창업을 한 곳은 7곳, 가게를 인수한 곳이 1개였으며 가업을 이어받은 12명의 장인 대부분이 부모나 조부모 시부모 등 윗세대로 부터 도제훈련을 받았다. 독립 창업을 한 7명 중 2명만이 정식 교육과정을 이수했고, 5명은 맛집순회와 연구를 통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립서점 창업자들의 배경도 다양하다. 대부분 언론, 출판, 디자인 등 관련업계에서 일하다 서점을 창업했다.
■ ‘속초 라이프스타일’ 만드는 문우당서림, 이해인 디렉터 겸 디자이너
강원도 속초시 중앙로 45 문우당서림(이하 문우당)은 독립 서점이지만 속초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이 필수적으로 찾는 명소다. 문을 연지 몇십년이 된 서점이다 보니 우선은 학창시절 무렵쯤에 느꼈을 책과 서점에 대한 감성이 깃들어 있다
여기에,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한 책갈피와 세심하게 분류된 서가에도 문우당의 매력이 깃들어 있다. 속초에 온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문우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유다.
▶오래된 책과 서점의 감성 바탕으로 한 대중 문화공간...문우당서림
지금의 문우당 공간을 만든 디렉트 겸 디자이너 이해인 씨는 서울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브랜딩과 기획 쪽 일을 했었다. 그러다 2017년 10월 고향인 속초에 내려와 문우당을 속초식 라이프스타일이 담긴 로컬 콘텐츠로 만들었다
원래 문우당은 1984년 아버지가 이민호 씨가 만든 서점이다. 처음에는 다섯평 남짓한 조그만 서점이었는데 조금씩 공간을 늘려가면서 서점을 키우고 2002년에 지금 위치로 이사를 했다. 그 무렵 문우당은 속초에서 유일하게 큰 규모의 서점이었다.
보통 지방의 서점은 학생들의 학습지나 잡지 판촉물을 판매하는 형태로 꾸려간다. 문우당도 마찬가지였지만 2002년 서점을 이전하면서, 서울을 오가기 어려운 속초에서 문화생활 등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대로 만든 것이다.
속초에서 36년, 이해인 씨는 서점에 들르는 것을 보물찾기에 비유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저의 집은 서점이었고, 찾는 사람들은 다양했습니다. 또래의 아이부터, 각을 잡아 눌러 쓴 중절모 사이로 흰머리가 비치는 노년의 할아버지, 말끔히 다려 입은 군복을 입고 휴가 나온 군인들까지...저마다 다른 경험과 기억들로 채워져 있을 이 공간에, 서가는 가장 우직하고 정직하게 자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서점에 들르는 것...또 하나의 ‘보물찾기’
익숙한 서가에서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책을 찾는다면, 또 다른 활력과 신선함을 느끼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담아 '서가에서 보물찾기'라는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한여름 밤, 익숙한 서점의 사람들과 공간을 처음 방문한 여행자 손님이 뒤엉켜 함께 서가를 열정적으로, 유심히 바라보는 풍경은 단골손님과 첫 방문자, 모두에게 신선하고 재미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최근 전국 어디서나 서점에 카페를 만들어 책과 커피, 책과 맥주를 동시에 찾는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하지만 문우당은 이해인 디렉터가 진열대를 모던한 감각으로 재구성하고 대중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매니아틱한 감성’을 추구하는 것 외에는 서점 그 자체를 고집하고 있다. 문구류를 좋아하는 이씨는 작년 12월 창고로 쓰이던 계단실에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문구류를 제공하는, ‘문단’이라는 문구점을 내기도 했다.
문우당은 속초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발굴하는 작업을 기획 중이다. 지역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주말이면 이곳에서 수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학교 선생님들이 소모임을 열기도 한다. 주부들이 모여서 활동을 하는 문화활동 공간대여 서비스도 만들었다.
이해인 디렉터는 이것을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라고 표현한다. 기존에는 사람들이 서점에 오는 이유는 필요에 따라, 수동적이었다. 앞으로는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아도 일상적으로 들러 능동적인 감성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속초의 다양한 산물 브랜딩화 구상
얼마전부터 강원도 동해안 몇몇 소도시에서는 각각의 라이프스타일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강릉은 커피, 양양은 서핑으로 대표된다. 속초의 라이프스타일은 무엇일까? 이해인 디렉터는 속초의 라이프스타일을 ‘나만의 밸런스’로 표현한다.
문우당 바로 앞에는 로컬 티셔츠 굿즈를 준비 중인 가게와 꽃집, 비단우유차, 동아서점이 인접해 있다. 문우당에서 칠성조선소까지 로컬 서점, 로컬 티셔츠, 로컬 음료, 로컬 랜드마크 등 골목상권에 맞는 개성있는 가게가 많다. 문우당 또한 속초의 대표 서점으로 골목을 활성화시키는 ‘앵커 스토어’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해인 디렉터는 “어릴적에는 속초가 이렇게 좋은지 모르고 컸는데 서울에서 살다가 돌아와 보니 속초의 가치를 새삼 깨달았다”며 로컬 콘텐츠 개발을 통한 속초만의 라이프스타일 정착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문우당의 2층 공간을 활용해 로컬 콘텐츠로 브랜드화 작업을 구상 중이다. 첫 번째가 속초에서 오랫동안 생산해온 참기름의 브랜딩 작업이다. 아직 브랜딩 되지않은 속초의 콘텐츠 중에는 가지미식혜와 냉면, 각종 해산물이 있다.
세계적으로 소도시 지역에 큰 서점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문우당처럼 서점의 역할이 큰 곳은 많지 않다. 그래서 속초에서 문우당의 존재는 더욱 각별하고, 앞으로의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취재 및 자료협조="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