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선택한 '마을 자취', 음주 잦아져
독서와 자기개발 위해 부대안 장교 숙소로 이사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자대 배치 후, 필자는 부대에 인접한(인접했다고 하지만 부대에서 마을까지는 트럭으로 40~50분, 걸어서 3~4시간 거리이다) 마을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사관학교에서 통제된 생활을 하다가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으니 굳이 부대 안의 장교 숙소에서 생활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했지만, 일과 이후에는 부대를 벗어나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에 자취를 선택했다. 그러나 마을에 살다보니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어려웠다. 퇴근 후에는 선배 장교들이나 중대원들과 어울리는 횟수가 많았고, 이들과 어울려서 음주 또는 당구 등으로 시간을 보내다보니 내 생활이 없다시피 했다.
자대 배치 후 6~7개월 정도가 흐른 시점에서 ‘도대체 내가 뭘하고 있지? 매일 술이나 마시고...’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안되겠다. 부대로 숙소를 옮겨서 퇴근 후에는 책도 보고 공부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부대장의 허락을 얻어, 며칠 후에 부대 안의 장교숙소로 짐을 옮겼다.
부대안의 장교숙소는 환경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부대는 산꼭대기에 있었는데, 때로는 저산소증(Hypoxia)이 생긴다고 할 정도로 높은 고도에 위치하고 있다. 난방이나 급수 문제는 오히려 병사들 내무반이 더욱 좋았다. 여기서 잠깐 그 지역의 기후를 얘기하면, 겨울은 9월말에 시작해서 다음해 5월 중순까지 지속된다.
즉, 9월 말 정도에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한겨울에는 평균 기온이 영하 20도 내외다. 거기에 강풍까지 불면 체감온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뚝 떨어진다. 그리고 5월 중순까지 눈이 내린다. 정말 기나긴 겨울이다. 돌이켜보면 강원도 부대에서의 생활은 추위나 눈, 강풍 등을 비롯한 자연과의 싸움이 가장 컸다.
부대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안개(산 밑에서 보면 구름)가 많았고, 이런 환경이다보니 늘 습기가 많았다. 옛날 이야기를 보면 신선들이 구름속에서 살고 또 구름을 타고 다닌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은 구름속에서 사는 것이 무슨 신선놀음을 하는 줄 안다. 그러나 천만에 말씀이다. 안개(산 밑에서 보면 구름)가 많은 지역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습기와의 싸움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숙소내부와 피복류는 늘 눅눅하고, 장비(특히 전자 장비) 관리에도 엄청 많은 신경이 쓰인다. 사람 몸에도 결코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장교 숙소는 병사 내무반보다 시설이 열악
그래서 일부 24시간 운영부서에서는 1년 내내 경유 난로를 가동(난방 및 습기 제거 목적)했고, 또 겨울이 일찍 시작하는 관계로 9월부터는 부대 전체가 난방을 시작했다(때로는 8월 말부터도). 물(식수 및 생활용수)도 부족했다. 지하수 또는 지표수를 모아두었다가 일정한 기간에 한번씩 제한급수를 하는 여건이었고, 장교들도 개인별로 양동이 한 개에 물을 받아서 일주일 정도를 사용했다. 이 물로 식수 및 세면을 하는데 이용했다.
화장실의 경우 수세식 화장실은 있으나 물이 부족한 관계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대부분 야외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겨울철에 야외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은 또다른 고통이었다.
또한 그곳은 여름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8월 한여름의 일주일 정도(서울에서 폭염이라고 할 때)를 제외하고는 늘 영상 10도 내외에 안개가 끼어 있을 때가 많아서 체감온도는 낮았고, 그래서 여름철에도 늘 야전잠바를 입고 생활해야 했다. 온수 공급은 거의 없었기에 한여름에도 샤워를 하려면 30분 정도 운동을 해서 신체 온도를 높인 후에 해야만 했다.
따라서 겨울철은 물론이고 한여름에도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 후, 끓인 물을 찬물에 섞어서 냉기만 겨우 없앤 물로 머리를 감던가 제한적인 샤워를 해야했다. 혹자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반문한다. 공군에도 그런 부대가 있느냐고.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경험한 범위 내에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공군에도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열악한 환경을 가진 부대가 있었다.
고지대에 위치해 체감 온도 55도로 떨어지기도
추운 날씨와 관련해서는 지금도 생각하기 싫은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가장 추웠던 날의 기억은 다음과 같다. 즉, 두번째 겨울의 어느 날 아침! 상황보고 시간에 기상파견대장(상사)이 그날의 기상을 보고한다. “대대장님! 현재 기온은 섭씨 영하 35도, 풍속 25~30노트! 따라서 현재 체감온도는 영하 55도 이하입니다.”
영하 55도라는 수치도 체감온도 환산표에서는 더 이상 환산할 수 있는 데이터(섭씨 영하 35도, 풍속 25~30노트)가 없기에 환산표에 있는 최저치인 영하 55도로 계산하였다고 한다. 즉, 실제 체감온도는 더 낮을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말에 모두들 눈이 동그래진다. 이 부대 창설 때부터 근무했다는 부사관도 이런 추위는 처음이란다. 이에 대대장이 지시한다. “현 시간부로 초병 등 최소 근무자를 제외하고 건물 밖 출입을 금지한다. 단, 장교들은 2명씩 조를 편성해서 야외 순찰을 실시해서 혹한에 따른 피해가 있는지 또는 피해가 예상되는지 확인하라!”
영하 55도라! 생전 처음 듣는 수치에 기가 질렸다. 그러나 대대장님의 지시인데 즉각 이행해야지. 장교들은 조를 편성해서 부대를 돌아보았다. 한편 필자는 순찰에 앞서서 전투복 안에 겨울 내의는 물론이고 체육복까지 껴입고, 방한모에 스키 파카(뒤집으면 흰색인 겨울 위장용 파카인데, 보온기능은 없다고 봐야 한다)까지 입고 순찰에 나섰다. 그러나 역시 영하 55도의 위력은 대단했다. 건물 밖을 나선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도 뼈속까지 추워지는 느낌이 온다. 춥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다. 이런 세상에...
순찰돌던 선배장교와 함께 '소변 실험' 실시, 만화책의 '오류' 확인
아무튼 부대를 한바퀴 돌아보고 이상유무를 확인한 후에 대대본부로 향했다. 이미 몸은 걸어다니는 ‘동태’ 수준이다. 북극이나 남극 탐험가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을지 대략 상상이 갔다. 그러나 이러한 추위와 고통 속에서도 머릿속에 반짝하는 것이 있었으니, 어릴때 만화책에서 보던 장면이 생각났다. 즉, 극심하게 추운 곳에서 소변을 보면 소변을 보는 순간 얼어붙는 장면이었는데, 같이 순찰을 하던 선배 장교에게 제안을 했다. “0중위님! (소변 보는)실험 한번 해볼까요? 순찰도 끝나가는데!” 같이 있던 선배 장교는 킥킥 웃으면 그러자고 했다. 체감온도 영하 55도, 야외에서 소변을 보면 언제부터 얼기 시작할까?
실험 결과 소변은 땅에 떨어지면서 얼기 시작했다. 즉, 몸에서 배출될 때는 체온 때문에 얼지 않다가 땅에 닿으며 튀는 순간 얼음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만화책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했다. 잠시 영하 55도의 고통은 잊고 서로 웃고 있었다. 한편, 장교숙소의 난방은 전기히터로 천장에서 더운 바람이 나오는 구조였는데, 24시간 가동되는 것이 아니고 일과 이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한번에 1~2시간씩 두세번 가동하는 식이었다. 건물의 외벽이 얇아 단열효과는 거의 없어서 히터 가동이 끝나면 방안의 온도는 빠르게 내려갔다.
밤새 추위에 시달리다 따뜻한 병사 내무반으로 달려가
그런데, 그마저도 히터 가동이 안 될 때가 있었으니 그때는 야외 혹한기 훈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환경에서 잠을 자야했다. 즉, 외부에서 공급되는 전기가 강풍 등으로 중단될 때가 있는데, 이때는 부대에서 보유하고 있는 비상 발전기를 가동하여 부대 내에 전기를 공급한다. 그러나 장교숙소는 전기공급 우선순위가 가장 낮아서 상황에 따라서는 전기 공급이 안 될 때가 있었고, 그럴 때는 전기히터 가동도 안되고 전기장판도 작동이 안되니 자다가 추워서 잠을 깬다.
새벽녘이 되면 실내 온도는 거의 영상 2~3도 정도로 떨어진다. 추위가 그렇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그때 많이 경험했다. 기상 시간이 되면 몸은 웅크려져서 마치 거북이가 손, 발, 머리를 자기 몸 안에 넣고 있는 그런 형태가 된다. 24시간 난방이 되는 병사 내무실에 가서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럴 수는 없고, 빨리 출근 시간이 되어서 사무실에 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