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뉴 리더]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하) ‘중후장대(重厚長大)에서 최첨단으로’, 기업문화도 바꿀까?

이상호 전문기자 입력 : 2019.09.26 07:11 ㅣ 수정 : 2019.09.26 07:11

[재계 뉴 리더]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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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현대·기아차, LG그룹 등 주요 대기업의 창업주에 이어 2세까지 별세하거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남으로써 창업 3·4세대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들 3·4세대는 ▲연령 30~40대의 ‘N세대’이자 Y세대’적인 특성에 ▲외국 유학을 통한 경영수업, 글로벌 의식을 가진 사람들로 각각의 경영철학과 전략으로 새로운 기업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뉴스투데이 는 이와 같은 3·4세대 경영시대의 새로운 기업문화 트렌드를 해당 기업 현장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사진제공=두산그룹]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 이원갑 기자] 두산그룹은 창업 120년이 넘은 대한민국 최고령 기업이지만, 4대를 거치는 동안 그룹이 분할된 적은 사실상 한 번도 없었다.

창업 3, 4세대에 이르면서 삼성은 CJ, 신세계 등으로, 현대가는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 등으로, LG는 GS, LS, LIG 등으로 분할됐다. 창업주의 형제나 자녀들의 독립, 분가(分家)에 따른 것이다.

현재 두산그룹은 박정원 회장을 필두로 그의 부친이자 창업 3세로, 올봄 타계한 박용곤 전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형제들, 즉 박 회장의 삼촌들과 그 자녀들, 4촌들에 의한 ‘대가족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8년 두산그룹이 중앙대학교를 인수했을 때, 재계에는 박용곤 회장 동생들의 ‘독립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박정원 회장의 삼, 사촌 중 그 누구도 두산그룹에서 독립해서 나간 사람은 없었다.

 

한 번도 ‘분할’ 없었던 두산그룹

삼촌, 사촌 등 온가족 ‘대가족 경영

박정원 회장의 삼촌은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박용현 중앙대학교 이사장 겸 예술의전당 이사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으로 대다수가 아직 경영일선을 지키고 있다.

박정원 회장의 친형제로는 여동생인 박혜원 오리콤 부회장과 남동생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이 주요 계열사를 맡고 있다. 사촌으로는 박경원 전 성지건설 부회장, 박중원 전 성지건설 부사장, 박진원 두산메카텍 부회장, 박석원 두산두산(정보통신BU 부사장),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 박형원 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 박인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등이 있다.

박정원 회장의 아버지, 고(故) 박용곤 회장의 동생 여섯 명 중 자신을 비롯한 다섯 명이 돌아가면서, 일정 기간 그룹 회장으로 경영을 총괄하기도 했다. 두산그룹의 이런 대가족 경영은 끈끈한 우애(友愛), 전통 때문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은 ㈜두산→두산중공업→두산건설·두산인프라코어→두산밥캣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 지분율이 7.4%로 최대 주주이긴 하지만 자신의 형제와 삼촌, 그 자녀(사촌)들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두산그룹의 지난해 매출액은 18조 원으로, SK하이닉스가 달성한 영업이익보다 적은 것이 현실이다.

자그마치 스무 명에 가까운 삼촌, 사촌들이 10여 개 남짓한 계열사의 고위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을 두고 재계 안팎의 우려를 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배당잔치’ 논란이다. 두산그룹의 계열사가 2014년부터 유동성 위기로 몸집을 줄이고 희망퇴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반면, 오너 일가는 매년 수백억 원, 회사의 순이익보다 많은 배당을 받아서 비판이 일기도 했다.

▲ 두산은 오는 2023년까지 그룹의 신성장 동력인 물류 자동화 솔루션 사업군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사진은 지난 7월 ㈜두산 산업차량 인천공장에서 열린 ‘종합 물류서비스 선두주자 도약’ 선포식에서 동현수 ㈜두산 부회장(왼쪽 일곱째), 곽상철 산업차량BG장(동 부회장의 오른쪽), 김환성 두산로지스틱스솔루션 대표(동 부회장의 왼쪽)를 비롯한 임직원과 고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두산그룹]

탈원전 친환경 미래산업, 신성장동력 육성

 

중공업기업 변신 이은 두 번째 체질변화, ‘혁신’

 

두산그룹이 또 한 번 체질변화와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OB맥주, 코카콜라 등으로 대표되는 음·식료 사업을 처분하고, 중공업기업으로 변신한 지 약 20년 만에 또 한 번 시도되는 체질변화, 혁신이다.

지난 2000년, 두산그룹은 중공업그룹으로의 변신을 위한 전진기지로 한국중공업을 인수했다. 그러나 현 정부의 탈(脫)원전 등 세계적인 친환경 개발 기조로 건설중기, 해수담수화, 발전플랜트 시장 등 글로벌 ISB(인프라 지원산업) 분야를 위주로 한 현재 두산그룹의 포트플리오는 불확실성이 높다.

이에 따라 박정원 회장은 친환경 미래사업으로 돌파하겠다는 계획이다.

오는 10월부터 ㈜두산을 두산솔루스(전지박), 두산퓨얼셀(발전용 연료전지) 3개사로 인적 분할해 신성장 사업 육성에 나서기로 했다. 탈원전 정책 등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 성장성에 한계를 보이는 중공업 부문 대신 신사업에 집중해 미래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두산은 오는 2023년까지 존속법인인 ㈜두산은 매출 7조 원, 두산솔루스와 두산퓨얼셀 각각 1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세웠다. ㈜두산은 ▲고부가가치 소재와 에너지 ▲물류 자동화 솔루션 사업군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기존 기계 사업의 고도화와 신성장 동력 발굴에 주력할 계획이다.

소재 및 에너지 부문에서 고사양 전자소재 사업과 친환경 수소에너지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5G 시대, 관련 소재 및 부품 시장은 2019년 6000억 원에서 2023년 1조9000억 원으로 33% 성장할 전망이다.

물류 창고 전체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합 설계하고 구축 및 운영하는 물류시스템 통합사업자(SI)에도 본격 나설 계획이다. AGV(Automated Guided Vehicle), 전동지게차, 협동 로봇, 산업용 드론 등 관련 사업의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23년 141조 규모로 추정된다.

두산퓨얼셀은 발전용 연료전지 사업에 집중한다. 지난해 세계 최대 부생수소 발전소(한화 대산)를 수주하는 등 수주 1조 원을 넘어섰고, 2023년 매출 1조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두산솔루스는 전지박, OLED 등 전자소재와 화장품, 의약품 등에 활용되는 바이오 소재 사업에 주력키로 했다. 전지박은 2020년 하반기부터 헝가리 공장에서 양산을 시작해 유럽 시장을 선점한다는 전략이다.

이 밖에 바이오 소재 분야도 헬스·뷰티 산업의 지속적인 확대에 힘입어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두산솔루스의 올해 예상 매출은 약 2600억 원, 2023년 매출목표는 1조 원이다.

두산 관계자는 “존속법인 ㈜두산은 이미 시장성과 경쟁력을 입증받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췄고, 이번에 분할되는 성장성 높은 두 사업은 별도 상장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라며 “이를 기반으로 공장 증설, 사업 영역 확대 등을 공격적으로 펼치며 시장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0년 두산그룹이 한국중공업을 인수, 중공업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한 이후 20년만에 박정원 회장이 그룹의 사활을 걸고 던지는 승부수로 평가된다.

박정원 회장은 지난해 신년사를 통해 “일하는 방식에서부터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는 일까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통한 혁신적 시도가 있어야 한다. 이런 시도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혁신적 운영방식을 도입하는 등 디지털 기업문화가 그룹 전반에 자리 잡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며 이미 두산그룹의 전환과 혁신을 예고한 바 있다.

 

중후장대(重厚長大), 사람 중시하는 두산의 기업문화

‘두산베어스 우승’ 만큼 절실한 ‘비즈니스 성공’

시중에 “두산그룹의 가장 성공한 계열사는 프로야구단 두산베어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두산베어스는 20세기 해태 타이거즈에 이어 2000년대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산 베어스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9년 동안 14차례나 정규시즌 3위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코리안시리즈 단골이 됐다.

두산베어스의 성공은 구단주인 박정원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과 경영 스타일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평가된다.

두산베어스 야구단의 한 고위 임원은 “야구단의 성적은 야구에 대한 경영진의 의지가 중요하다”며 “구단주가 선수단과 프런트의 영역을 철저하게 존중해주고 전폭적으로 응원해주었기에 영광을 맞을 수 있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두산그룹의 기업문화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안팎에서 평가하는 두산그룹의 분위기는 “최고령, 장수(長壽)기업으로서 전통과 무게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산이 창업 4세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가치는 ‘인재의 소중함과 인화(人和)’ 등 사람을 존종하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두산가(家)는 선대부터 박정원 회장의 삼촌들까지 모두 인품이 중후하고 경우가 바른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

이런 ‘중후장대(重厚長大)’한 기업문화가 두산중공업의 인수 등을 통해 중공업그룹으로 변신하고, 관련 기업의 인수합병 등 2000년 이후 지금까지 그룹 경영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두산그룹 역시 LG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오랜 역사, 우직함과 성실함 등 전통적인 가치로 사람을 중시하는, 보수성이 기업발전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LG와 쌍벽을 이루는 두산그룹 특유의 보수적 기업문화가 박정원 회장이 내놓은 새로운 생존전략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첨단, 스마트한 두산문화의 재창조’는 ‘새 먹거리 창출’ 못지않게 중요한 박정원 회장의 과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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