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전기차 배터리 시장 1600억 달러 vs. 메모리 반도체 시장 1490억 달러
한중일 3파전이었던 글로벌 시장 판도 가변성 커져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4차산업혁명시대의 ‘포스트 반도체’로 꼽히는 ‘전기차 배터리’시장을 둘러싸고 한국기업 간에 제살깎아먹기식 ‘내전’이 벌어지고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간의 소송전으로 인해 중국업체 및 유럽의 후발주자들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대승적 차원의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에 의한 인력 및 기술 유출 의혹을 제기하며 소송전을 시작했던 LG화학은 지난 10일 이 같은 시각에 대해 ‘잘못된 ’프레임‘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자국기업을 지원하고 있을 뿐이지 국내 업체들이 소송전을 벌이는 바람에 배제된 것은 아니라는 해명이었다.
하지만 LG화학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화석연료를 쓰는 자동차를 친환경자동차가 대체하는 추세가 빨라지면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새로운 먹거리로 꼽히고 있다.
그만큼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급팽창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대표 김광주)에 의하면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99.9GWh이다. 오는 2025년까지 1272GWh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7년 만에 11배로 성장한다는 이야기이다.
지난해 연말 기준 국내 메모리 반도체 매출총액은 1650억달러(약 198조원)인데 비해 전기차용 배터리 매출총액은 530억달러( 63조원)였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 매출액이 메모리반도체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규모가 연평균 25%씩 성장해 2025년 1600억달러(약 18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2025년 1490억달러(약 169조원) 시장으로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배터리가 메모리반도체보다 110억달러(약 13조원) 정도 큰 시장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동안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한중일 간의 3파전 양상이었다. 지난 5월 기준 전기차배터리 세계시장 사용랑 순위에서 LG화학 4위, 삼성 SDI 6위, SK이노베이션 9위 등이다. 하지만 시장이 급팽창하면 기존 순위의 유동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20세기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선점은 ‘무주공산’을 공략한 ‘역발상’의 산물
21세기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이미 ‘국가주의’가 판치는 ‘레드오션’
격화될 배터리 전쟁에서 승자가 돼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수출로 글로벌 가치 사슬망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온 한국경제의 위치가 유지될 수 있다. LG화학이나 SK이노베이션과 같은 개별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더욱이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의 최강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불황기에 과감하게 투자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역발상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경쟁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를 증산해봐야 팔 수 없다고 판단, 발을 빼는 와중에 형성된 ‘무주공산’을 공략했던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이견이 없다. 이미 유혈이 난무하는 경쟁이 진행중인 ‘레드오션’이다.
강대국 정부와 일류기업들이 손을 맞잡고 몸집과 실력을 키우고 있다. 이제 자유시장경제 논리는 존재감을 상실하고 있다.
21세기 글로벌 경제는 ‘국가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판치는 곳이다. 자유시장경제 논리만으로는 어떤 탁월한 기업도 승자가 되기 어렵다. 정치권력이 자국 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상대국 기업을 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짓밟아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풍경이 일상화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기업 화웨이 죽이기에 나서면서 애플에 대해 각종 특혜를 베푸는 것은 철두철미한 ‘미국중심주의’의 발로이다. 결코 시장논리가 아니다.
‘제국주의 일본’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총리가 한국에 대해 경제보복 조치를 취한 것은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을 판결한데 대한 반격이라는 명분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삼성전자와 같은 한국기업의 성장세를 꺾기 위한 양동작전(陽動作戰)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영국정부가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EU탈퇴)를 강행할 수 있는 원동력도 “이민자들을 내쫓고 우리만 잘살아보자”는 다수 영국인들의 욕망에 있다.
EU,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승자 꿈꾸며 자국기업 지원
중국, 자국기업만 보조금 지급하며 한국기업 배제
EU가 자국기업들을 키워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승자가 되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EU중심주의’의 소산이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지난 8일(현지시간) 스웨덴의 배터리 업체인 노스볼트와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생산하는 공장을 짓기 위한 합작사를 설립했다고 발표했다.
폴크스바겐은 LG화학의 고객사였다. SK이노베이션은 폴크스바겐과의 합작사 설립을 추진중이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간의 특허 및 인재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폴크스바겐은 유럽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선택한 것이다. 노스볼트는 10위 권 밖인 기업이다. 폴크스바겐의 선택이 한국의 기업들로서는 뼈아픈 사건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폴크스바겐이 노스봍트에 9억 유로를 투자해 설립하는 전기차 배터리 공장은 연간 생산 능력은 16GWh(기가와트시) 규모이다. 이는 현재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에 비추어 볼 때 ‘대규모’급이다. 1.8GWh에 그쳤던 지난 해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에너지양의 8.9배에 이른다.
폴크스바겐은 내년부터 독일 중북부 잘츠기터에 합작공장 건설을 시작해 이르면 2023년 말부터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폴크스바겐은 이에 앞서 2028년까지 70종의 새 전기차 모델, 2천200만대를 생산하기 위해 2023년까지 300억 유로 이상 투자한다는 로드맵을 수립했다. 급팽창하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10일 외신 보도에 따르면, 독일 경제부는 최근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두 번째 유럽 배터리 생산 컨소시엄 구성을 논의하고 있고 10억 유로(약 1조3000억원)를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컨소시엄에에 BMW 등 독일 자동차 기업들이 참여, 한중일 배터리 기업들과 경쟁할 유럽 배터리 업체를 키워낸다는 구상이다.
앞서 지난 5월에도 독일과 프랑스는 약 60억 유로(약 7조8000억원)를 투자해가 공동으로 배터리 제조 컨소시엄을 설립하는 계획을 확정지었다.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시장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판단,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산업구조 재편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더 노골적이다. ‘배타적 보조금 전략’으로 자국 배터리기업들에게 반사이익을 선물하고 있다. 지난 2107년 1월부터 3년 동안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제외하고 있다. 당연히 CATL(1위), 비야디(3위), 궈쉬안(7위), 리선(10위) 등이 중국 배터리업체들이 그 수혜자들이다.
한국 정부도 ‘채찍’아닌 ‘당근’ 주며 중재 나서야
이런 판에 한국의 배터리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을 넘어서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분 상태’가 장기화된다면 미래는 어둡다. 미국, 일본, 중국, EU 등 각국 정부가 자국기업 밀어주기에 혈안에 돼있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우리 정부가 수수방관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간의 배터리 전쟁에 중재라도 나서는 게 순리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채찍’을 휘두를 생각이라면 철부지이다. 다른 강대국 정부처럼 ‘당근’도 줘야 한다.
물론 양사가 ‘협상과 양보’라는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